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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9일 큐티입니다~~^^

wkchurch 2018.04.17 09:57 조회 수 : 0

[금요큐티] 사나 죽으나 주님을 기쁘시게

고린도후서 5장1~10절말씀

 

앞에서 '보이지 않는 것' 의 영원함을 언급했다고 해서 물질 세계의 부정과 비하를 기독교의 신앙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곧 이어 바울은 그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이 몸의 부활임을 설명합니다. 그 부활의 변화를 인간의 거주 장소인 집에 빗대어 비유합니다. 우리의 몸은 잠시 머무는 텐트와 같습니다. 몸은 낡고 헐지만 그렇다고 나중에 우리가 벌거벗은 영혼으로 떠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해 입혀 주시는 천상의 집인 부활의 몸, 즉 신령한 몸 (고전 15:44, 영의 몸) 을 입게 됩니다. 우리는 현재 연약한 이 세계 질서의 몸속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며, 그 신령한 몸을 입기 바라는 간절함으로 신음합니다. 그러한 우리의 소망이 헛것이 아님을 보증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몸의 부활의 보증입니다.

 

바울은 현재의 몸에 가해지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약점에 좌우되지 않는, 더 좋은 집인 부활의 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부활의 몸을 입은 뒤에 우리는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게 됩니다 (살전 4:17). 그래서 바울은 오히려 현재 상태를 주님과 떨어져 있는 것으로 표현하며, 차라리 육신의 죽음을 통해 영의 몸을 입고 시공의 간극을 넘어 주님과 영원히 동거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몸을 입고 있는 삶을 의미 없는 것으로 보아 소홀하지 않습니다. 현재 이 몸으로 한 것을 가지고 그때에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몸은 썩을 것이지만 그 몸으로 행한 것에 따라 영원한 부활의 몸 상태가 좌우됩니다. 그렇기에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부활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서 오는 차이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천국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 땅이 삶의 최종 목표입니다. 그러나 천국을 사모하는 사람은 영원의 관점 안에서 이 땅의 삶을 설계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과 눈에 보이는 일에 목숨을 거는 삶은 차원이 다릅니다. 천국을 사모한다고 해서 이 땅의 삶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육체에 거하는 동안 부활의 삶을 철저히 준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삶이 힘들어도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삶의 목표가 주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에 모든 사람이 심판대에 서고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 상은 천국에서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에 천국의 삶은 이 땅에서 이미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 계신 영원한 처소를 사모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제게 허락하신 날들도 소중히 여기길 원합니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 지는 날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소원하는 귀한 믿음의 지체님들 오늘도 하늘나라의 평강과 기쁨을 맛보는 복된 날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하트)(하트)(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