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로마서 3장. 구원은 자랑할 수 없다.
작성자
wkchurch
작성일
2021-06-21 15:52
조회
848
로마서 3장. 구원은 자랑할 수 없다.
1. 율법도, 할례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해서, 유대인이 가지는 유익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말은 아니라고 바울 사도는 부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이방인과 비교할 때 크나큰 축복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닌다고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과 비교할 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특권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2. 그러나 유대인이 주장하는 반론과 궤변들을 바울 사도는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폐할 수 없고, 그들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고 해서 그들이 무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선을 이루기 위해 죄 짓는 것도 괜찮다고 가르쳤다고 비방했는데, 이들의 말은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3.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을 포함하여, 온 인류가 다 하나님의 정죄 아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못 박듯이 선언합니다(9). 모든 인류 가운데 의인이 하나도 없고, 그들의 행위와 말과 마음이 다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10~18). 결국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이 율법에 의해 정죄를 받는다면, 율법을 가지지 않고 양심에 쓰여진 법을 따라 살아간 이방인이야 더욱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19). 율법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인간은 율법 앞에서 다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를 획득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지금까지 주장한 나쁜 소식(bad news)입니다.
4. 21절은 헬라어로 ‘그러나 이제는(but now)’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기 놀라운 전환점이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도저히 인간이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별개로(상관없이) 하나님의 의를 계시하셨습니다. 그 의는 이미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성경이 증거했던 바입니다. 그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인데,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차별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5. 바울 사도는 곧바로 복음의 핵심으로 들어갑니다. 모든 사람의 절망의 상태를 하나님은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23). 아담 안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대신 대가를 지불하심으로써, 우리는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24).
6. 이 복음의 방법은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오래 참으심으로 죄를 간과하셨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세우셔서 그 피를 흘려 죄의 대가를 받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방식인데, 여기서 아담 안에 있던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위한 모든 형벌이 치러졌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모든 믿는 자에게 전가되었습니다(25). 이것은 하나님의 의로움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고 선언하심으로써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26).
7. 하나님의 의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일은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써 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기에(27~28, 30) 죄인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27).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피를 흘리셔서,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르시고, 그의 완전하신 의를 거저 주신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평생 고백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 것이며(고전 1:31), 그리스도 예수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말의 의미입니다(고전 2:2; 갈 6:14). 이 믿음의 방식은 율법을 폐기하지 않고, 도리어 율법과 복음의 의미를 보다 온전하게 드러냄으로써 율법을 세웁니다(31).
8. 그리스도인은 값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로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도달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고, 그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처지에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자랑할 뿐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효력이며 결과입니다. 구원받은 자를 거룩하게 살게 하는 힘은 여기서 나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신앙의 업적입니까? 내 믿음의 크기입니까? 내 간증입니까? 아니면 내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합니까?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영원히 망할 수밖에 없는 저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하여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하고 황송한 은혜를 찬양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령님의 함께하심을 자랑하는, 저희의 인생과 가정과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혹이라도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것들을 자랑하고, 나를 자랑하지 아니하도록, 저희의 연약한 마음을 지켜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율법도, 할례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해서, 유대인이 가지는 유익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말은 아니라고 바울 사도는 부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이방인과 비교할 때 크나큰 축복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닌다고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과 비교할 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특권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2. 그러나 유대인이 주장하는 반론과 궤변들을 바울 사도는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폐할 수 없고, 그들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고 해서 그들이 무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선을 이루기 위해 죄 짓는 것도 괜찮다고 가르쳤다고 비방했는데, 이들의 말은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3.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을 포함하여, 온 인류가 다 하나님의 정죄 아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못 박듯이 선언합니다(9). 모든 인류 가운데 의인이 하나도 없고, 그들의 행위와 말과 마음이 다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10~18). 결국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이 율법에 의해 정죄를 받는다면, 율법을 가지지 않고 양심에 쓰여진 법을 따라 살아간 이방인이야 더욱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19). 율법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인간은 율법 앞에서 다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를 획득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지금까지 주장한 나쁜 소식(bad news)입니다.
4. 21절은 헬라어로 ‘그러나 이제는(but now)’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기 놀라운 전환점이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도저히 인간이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별개로(상관없이) 하나님의 의를 계시하셨습니다. 그 의는 이미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성경이 증거했던 바입니다. 그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인데,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차별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5. 바울 사도는 곧바로 복음의 핵심으로 들어갑니다. 모든 사람의 절망의 상태를 하나님은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23). 아담 안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대신 대가를 지불하심으로써, 우리는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24).
6. 이 복음의 방법은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오래 참으심으로 죄를 간과하셨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세우셔서 그 피를 흘려 죄의 대가를 받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방식인데, 여기서 아담 안에 있던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위한 모든 형벌이 치러졌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모든 믿는 자에게 전가되었습니다(25). 이것은 하나님의 의로움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고 선언하심으로써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26).
7. 하나님의 의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일은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써 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기에(27~28, 30) 죄인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27).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피를 흘리셔서,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르시고, 그의 완전하신 의를 거저 주신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평생 고백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 것이며(고전 1:31), 그리스도 예수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말의 의미입니다(고전 2:2; 갈 6:14). 이 믿음의 방식은 율법을 폐기하지 않고, 도리어 율법과 복음의 의미를 보다 온전하게 드러냄으로써 율법을 세웁니다(31).
8. 그리스도인은 값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로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도달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고, 그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처지에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자랑할 뿐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효력이며 결과입니다. 구원받은 자를 거룩하게 살게 하는 힘은 여기서 나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신앙의 업적입니까? 내 믿음의 크기입니까? 내 간증입니까? 아니면 내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합니까?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영원히 망할 수밖에 없는 저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하여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하고 황송한 은혜를 찬양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령님의 함께하심을 자랑하는, 저희의 인생과 가정과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혹이라도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것들을 자랑하고, 나를 자랑하지 아니하도록, 저희의 연약한 마음을 지켜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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