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로마서 7장. 율법 없는 복음은 값싼 은혜다.
작성자
wkchurch
작성일
2021-06-21 15:55
조회
796
로마서 7장. 율법 없는 복음은 값싼 은혜다.
1.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옛 주인인 죄와 불의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의의 종이 되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6장). 사도는 이어서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더 죄를 지어도 상관없을 뿐 아니라,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하니, 도리어 죄를 짓는 것이 더 낫겠다고 주장하는 반대 논리를 다루기 위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믿음이 가져오는 순종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그래서 7장은 하나님과 의의 종이 된 그리스도인에게 율법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다룹니다.
2. 먼저 사도는 율법과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부부 관계에 비추어 설명합니다(1~6). 부부로 사는 동안 다른 사람과 합하는 것은 간음입니다. 하지만 부부 중 한 편이 죽는다면 부부 관계는 종결되고 자유롭게 됩니다. 부부관계처럼 모든 인간은 율법에 매여 사는 존재였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신자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6:6), 율법은 더 이상 신자에게 어떤 권한도 주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은 신자는 율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고, 그리스도께 시집간 존재가 되었습니다. 율법과의 결혼관계를 청산하지 않고는 그리스도께 시집갈 수 없으며, 신자의 열매는 그리스도와의 정상적 결혼관계 속에서 낳는 자녀와 같은 것입니다. 누구도 율법과 그리스도를 동시에 취할 수 없습니다.
3. 그러면 율법이 문제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7). 문제는 율법이 아니라 육신에 있는 죄입니다(7~13). 언젠가 바울은 율법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에는 죄가 살아났고 자기는 죽었다고 말합니다(9).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고통은 죄를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죄의 본질을 알 때, 죄인은 비로소 자기 영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고 구원자를 찾게 됩니다. 죄가 죄로 드러나지 않으면 자아는 살아 있지만, 죄가 죄로 드러나면 자아는 죽습니다. 죄는 율법을 이용하여 더 범죄하게 할 만큼 기만적이고 무서운 것입니다(8,11).
4. 14~25절에서 사도가 말하는 ‘나’는 거듭난 신자인가, 불신자인가 하는 문제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다수의 개혁주의적 해석은 거듭난 신자로, 감리교(알미니안)는 불신자의 고백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헤르만 리델보스나 마틴 로이드존스는, 이 사람을 율법을 깨달아 자기 죄의 진상을 보았으나, 아직 그리스도께 나아와 복음의 자유를 얻지 못한 사람으로 봅니다.
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절망적 탄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님께 인도하기 위해서, 먼저 율법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은혜의 고백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율법으로 인한 고통스런 탄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깊이 깨달아 자신의 죄의 진상을 보고, 자기 영혼에 대한 고통스러운 탄식을 느낄 겨를도 없이, 소위 ‘영접 기도’를 하고, 소위 ‘신자’가 되고는 합니다. 율법 없는 복음이 만연합니다. 그렇다보니 8장에서 보게 될,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감격적 선언도 더 이상 감격적이지 않게 되고 말았습니다(8:1). 어떻습니까?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는 것(25)으로 인해,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누가 나를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탄식합니까?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으로 우리의 죄악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율법으로 인해, 우리 안에 우상숭배와 탐욕과 거짓과 살인과 도둑질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율법과 계명을 통하여, 저희 자신이 죄인인 것과 죄 가운데 살아가는 죄인의 비통함을 인정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복음의 참 자유를 풍성히 누리는 복된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옛 주인인 죄와 불의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의의 종이 되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6장). 사도는 이어서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더 죄를 지어도 상관없을 뿐 아니라,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하니, 도리어 죄를 짓는 것이 더 낫겠다고 주장하는 반대 논리를 다루기 위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믿음이 가져오는 순종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그래서 7장은 하나님과 의의 종이 된 그리스도인에게 율법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다룹니다.
2. 먼저 사도는 율법과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부부 관계에 비추어 설명합니다(1~6). 부부로 사는 동안 다른 사람과 합하는 것은 간음입니다. 하지만 부부 중 한 편이 죽는다면 부부 관계는 종결되고 자유롭게 됩니다. 부부관계처럼 모든 인간은 율법에 매여 사는 존재였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신자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6:6), 율법은 더 이상 신자에게 어떤 권한도 주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은 신자는 율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고, 그리스도께 시집간 존재가 되었습니다. 율법과의 결혼관계를 청산하지 않고는 그리스도께 시집갈 수 없으며, 신자의 열매는 그리스도와의 정상적 결혼관계 속에서 낳는 자녀와 같은 것입니다. 누구도 율법과 그리스도를 동시에 취할 수 없습니다.
3. 그러면 율법이 문제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7). 문제는 율법이 아니라 육신에 있는 죄입니다(7~13). 언젠가 바울은 율법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에는 죄가 살아났고 자기는 죽었다고 말합니다(9).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고통은 죄를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죄의 본질을 알 때, 죄인은 비로소 자기 영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고 구원자를 찾게 됩니다. 죄가 죄로 드러나지 않으면 자아는 살아 있지만, 죄가 죄로 드러나면 자아는 죽습니다. 죄는 율법을 이용하여 더 범죄하게 할 만큼 기만적이고 무서운 것입니다(8,11).
4. 14~25절에서 사도가 말하는 ‘나’는 거듭난 신자인가, 불신자인가 하는 문제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다수의 개혁주의적 해석은 거듭난 신자로, 감리교(알미니안)는 불신자의 고백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헤르만 리델보스나 마틴 로이드존스는, 이 사람을 율법을 깨달아 자기 죄의 진상을 보았으나, 아직 그리스도께 나아와 복음의 자유를 얻지 못한 사람으로 봅니다.
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절망적 탄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님께 인도하기 위해서, 먼저 율법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은혜의 고백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율법으로 인한 고통스런 탄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깊이 깨달아 자신의 죄의 진상을 보고, 자기 영혼에 대한 고통스러운 탄식을 느낄 겨를도 없이, 소위 ‘영접 기도’를 하고, 소위 ‘신자’가 되고는 합니다. 율법 없는 복음이 만연합니다. 그렇다보니 8장에서 보게 될,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감격적 선언도 더 이상 감격적이지 않게 되고 말았습니다(8:1). 어떻습니까?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는 것(25)으로 인해,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누가 나를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탄식합니까?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으로 우리의 죄악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율법으로 인해, 우리 안에 우상숭배와 탐욕과 거짓과 살인과 도둑질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율법과 계명을 통하여, 저희 자신이 죄인인 것과 죄 가운데 살아가는 죄인의 비통함을 인정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복음의 참 자유를 풍성히 누리는 복된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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