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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갈라디아서 3장.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는 차별이 없다.

작성자
wkchurch
작성일
2024-04-23 07:29
조회
277
갈라디아서 3장.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는 차별이 없다.

 

 

 

1. 1~2장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통하여 복음의 진정성을 말했던 사도는, 3과 4장에서 구체적으로 칭의 교리를 다룹니다. 그리고 5~6장에서는 그 적용을 다룰 것입니다. 사도는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라는 강한 표현으로 시작합니다(1). 사도는 신자의 삶이 시종일관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으로 시작했던 갈라디아 사람들이, 중간에 믿음을 행위로 바꾸거나 믿음을 버린다면, 처음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었음을 드러내는 셈입니다.

 

 

 

2. 사도는 그들이 율법을 행했을 때가 아니라, 처음 믿었을 때 성령을 받은 것을 상기시킵니다(5). 만일 갈라디아 교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정녕 보았고 믿었다면, 그들은 참 복음과 거짓 복음을 분별할 것이므로, 사도는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권면합니다(1).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말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시작한 사람은 육체의 행위로 마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한 사람은 성령으로 마칩니다(3). 성화 없는 칭의는 없습니다. 성화는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는 의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의에 근거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입어가는 거룩함입니다.

 

 

 

3. 사도는 참 아브라함의 자손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 모든 자라고 설명합니다(6~9). 아브라함 자신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자이므로, 그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창 15:6). 하지만 여전히 율법이 선포하는 저주의 문제는 남아있습니다. ‘율법 행위에 속한 자’는 율법의 행위에 의존하는 사람을 말합니다(10). 이런 사람은 다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됩니다. 여기서 벗어날 인간은 없고 사람이 살 길(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들어가는 길)은 믿음 밖에 없습니다(11). 믿음과 행위(율법)는 배타적이라서 함께 갈 수 없습니다(12). 모든 인간은 다 율법의 저주 아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아 죽으시므로, 믿는 자의 구주가 되셨습니다(13). 그리스도는 우리가 받을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14).

 

 

 

4.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의도는 무엇일까요? 사도는 약속(복음)과 율법의 두 개념을 대조하여 설명합니다. 약속은 “내가 하리니”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고, 율법은 “너는 할지니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사도는 그 설명을 유언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15). 여기 ‘언약’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유언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유언의 법적 효력이 일단 발생하고 나면, 유언을 한 사람이 죽기 전이라도 그 내용을 변경할 수 없었습니다.

 

 

 

5. 사도는 15절에서 이 말을 하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도, 430년 후에 모세에게 주신 율법에 의해 폐기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17). 유언의 수혜를 받는 피상속인은 유언에 기록된 약속에 의해 상속을 받게 되는데, 유언을 믿지 않고 멀리 가버린 사람은 유언의 수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유산 상속은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받을 뿐입니다. 사도는 이렇게 ‘사람의 예대로’ 믿음의 도를 가르칩니다(15).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씨’(후손)는 히브리어로 단수 집합명사로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16). 하나님께서는 때가 찼을 때, 그 약속된 그리스도를 죄인들을 위해 보내셨습니다. 율법이 성과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약속은 믿음을 요구할 뿐입니다(18). 이것이 은혜입니다. 약속은 모세 같은 중보자를 통해서 주어지는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복음입니다(20).

 

 

 

6. 사도는 율법은 약속(복음)을 거스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21). 율법이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는 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약속이라는 고속도로에 들어갈 길이 없는 상황에서, 율법이라는 진입로가 주어졌다고 설명될 수 있습니다(19). 율법은 복음이라는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유일한 진입로입니다. 율법은 자체로는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21). 지켜서 구원을 얻게 할 의도로 주셨다면, 여전히 사람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어야 할 것이지만, 하나님은 약속과 믿음의 원리를 따라 구원하기를 원래부터 기뻐하셨습니다(22). 고로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잠정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19,22).

 

 

 

7. 사도는 율법의 기능을 두 가지 예로 설명합니다. 율법은 사람을 가두는 감옥이나 간수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22~23). ‘성경이 온 세상을 죄 아래 가두었다’고 할 때 ‘성경’은 구약 성경 특히 율법을 가리킵니다. 다만 기한이 있습니다. 언제까지인가 하면 그리스도가 오기까지입니다. 매인 자들은 풀려나기를 원하는데,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해주신 일입니다. 율법의 기능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예는 초등교사입니다(24). 초등교사는 고대 그리스에서 아이가 성숙한 청년이 되기까지 책임지는 노예인데, 대개 이들은 매를 들고 엄격한 선생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 성년이 되면 더 이상 초등교사의 지도와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또 하나의 기능입니다. 엄격하고 무섭지만 일단 그리스도께 인도함을 받게 되면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25).

 

 

 

8. 지금까지 바울 사도가 이신칭의의 교리를 설명한 대상이, 구약성경을 이해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었다면(3:6~25), 이제 사도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한 복음의 도리를 가르치려고 합니다(3:27~4:31). 이 두 대상을 향한 사도의 가르침을 연결해주는 구절이 26절입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헬라어 성경에서 이 구절은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하는데, 더 이상 율법이 감옥과 초등교사의 역할로서 그리스도인에게 구속력을 가지지 않는 이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9. 사도가 여기까지는 구속사를 중심으로 설명해 왔다면, 이제는 한 개인이 예수님을 믿는 과정을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그 첫 번째가 세례입니다(27). 세례는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표시입니다(롬 6:3~4).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연합된 표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이것은 옛 생활에서 새 생활로의 결정적인 변화를 거쳤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경험하는 새로운 현상은, 그들의 이전 옷들이 다 벗겨졌고, 새로운 옷, 그리스도로 옷을 입음으로써, 과거에 있던 모든 차별과 장벽들이 다 사라졌다는 것입니다(28). 이것이 교회의 신비이고 세상을 향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26)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이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상속자)의 신분으로 확장됩니다(29). 유대인인가, 헬라인인가는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복음 진리 안에서 말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포기할 수 없는 이신칭의 복음의 내용입니다.

 

 

 

10. 사도가 설명하는 이 복음을 충분히 알고 이해하고 있습니까? 계속해서 배우고 있으며, 이 복음을 바르게 알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가 이 복음의 진리로 무장하고 견고하게 세워짐으로, 참된 교회, 세상에 증거가 되는 하나된 교회를 드러내기를 간절히 구하십시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율법을 지켜내려는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값없는 은혜에 의하여, 그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아 그리스도로 옷 입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형제들과 더불어 세상의 신분을 넘어 하나가 되게 하신 은혜를 누리며, 복음의 풍성함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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