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갈라디아서 4장. 종이 아니라 아들이다.
작성자
wkchurch
작성일
2024-04-23 07:29
조회
172
갈라디아서 4장. 종이 아니라 아들이다.
1. 신자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을 자인데, 유업을 완전히 상속받는 성인이 될 때까지는, 후견인이나 청지기 아래 있는 존재와 같습니다(1~2). 유대인 신자들은 율법 아래 매여 있었고, 이방인 신자들은 세상의 초등학문(이교적인 모든 규정과 방식들)아래 매여 있었습니다(3).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어 그리스도를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고(4), 이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고 성도들로 하나님의 아들들(상속자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5).
2.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더 이상 율법이나, 세상 초등학문 아래 매여 있는 종이 아니라, 아들의 명분을 얻은 상속자입니다(6~7). 하나님은 이들에게 아들의 영인 성령을 주셔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6).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는 세상 초등학문에 매여 종노릇했을지라도, 이제 하나님을 아는 자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9).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아신 바 되는 것입니다(8~9). 사도는 갈라디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믿음의 진위를 다시 확인하라고 도전합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은혜를 받아 아들이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의 영향으로 전에 종노릇하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이는 사도의 모든 수고를 헛되게 만드는 것입니다(10~11).
3. 사도는 갈라디아 사람들이 처음에 어떤 마음으로 복음을 받았는지를 상기시킵니다. 그들은 바울 사도가 가진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고, 천사와 같이 혹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그를 영접해주었습니다(13~14). 왜 그랬을까요? 바울이 전한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눈이라도 빼어서 바울의 연약한 시력을 대신하고 싶어 할 정도로 바울을 사랑했습니다(15). 이러한 모습은 복음의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을 어떤 존경과 사랑으로 대했는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은혜 받는 심령이 어떤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4. 그러나 아무리 그러했을지라도, 지금 현재에는 거짓 교사들의 영향으로 바울을 원수로 여긴다면, 그것은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떠났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16) 사도는 거짓 교사들이 선한 동기로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 사람들과 바울 사이를 이간하려는 목적으로 열심을 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17~18). 그러나 사도는 마치 자녀를 해산하는 어머니 같은 심정으로, 지금도 갈라디아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해산하는 수고를 감당하겠다고 말합니다(19). 그래서 사도는 갈라디아 사람들을 부모의 심정으로 엄히 꾸짖고 싶어 합니다(20).
5. 사도가 꾸짖으려는 것은, 그들이 완전히 율법 아래로 돌아간 것은 아니라도, 지금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입니다(21). 그래서 사도는 구약의 두 언약의 비유를 들려줍니다. 아브라함이 두 아내가 있어서 그들로부터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고, 사라를 통해서 이삭을 얻었습니다. 하갈은 종이고 사라는 자유인입니다. 이스마엘은 육신을 따라(아브라함과 사라의 인간적 계획 하에 자기들의 노력으로) 낳은 아들이었으나, 이삭은 약속을 따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아들이었습니다.
6. 하갈은 아라비아의 시내산, 현재의 예루살렘을 상징하고,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상징합니다. 두 여인은 두 언약을 대표합니다. 하갈은 율법 언약을, 사라는 약속 언약을 대표합니다. 사도는 이 비유를 통해, 갈라디아 사람들이 만일 율법을 지켜서 할례를 행하려 한다면, 그것은 종인 하갈에게로, 그리고 육체의 방법에로, 지상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자유인인 사라에게 속하여, 천상의 예루살렘의 성도가 될 사람들입니다. 갈라디아에서 예수를 믿은 사람들은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들입니다(28). 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하였듯이, 언제나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하게 되는데, 지금 갈라디아 교회에서 거짓 교사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29). 그러므로 사도는 이제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고 꼭 집어서 명령합니다(30). 이는 거짓 교사들을 내쫓으라는 명령입니다.
7.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율법과 복음의 문제로 씨름합니다. 율법적 성향에 묶여있는 본성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선명한 복음의 진리를 들어야 합니다. 외면적이고 종교적인 행위로 신앙을 확인하고 증명하려는 모든 태도는, 사도가 배척하는 율법주의적인 경향입니다.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자들은 복음의 은혜와 자유와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복음은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제시하며, 그 약속과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음으로 붙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고 자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고, 자녀됨의 확신을 누리게 하십니다. 당신은 그 은혜를 알고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하나님 나라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셔서,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감당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부르심과 은혜를, 율법의 행위와 자기의 의로 바꾸지 않게 하시며, 일평생 그 은혜를 더 알고 누리며, 사나 죽으나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신자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을 자인데, 유업을 완전히 상속받는 성인이 될 때까지는, 후견인이나 청지기 아래 있는 존재와 같습니다(1~2). 유대인 신자들은 율법 아래 매여 있었고, 이방인 신자들은 세상의 초등학문(이교적인 모든 규정과 방식들)아래 매여 있었습니다(3).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어 그리스도를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고(4), 이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고 성도들로 하나님의 아들들(상속자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5).
2.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더 이상 율법이나, 세상 초등학문 아래 매여 있는 종이 아니라, 아들의 명분을 얻은 상속자입니다(6~7). 하나님은 이들에게 아들의 영인 성령을 주셔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6).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는 세상 초등학문에 매여 종노릇했을지라도, 이제 하나님을 아는 자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9).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아신 바 되는 것입니다(8~9). 사도는 갈라디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믿음의 진위를 다시 확인하라고 도전합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은혜를 받아 아들이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의 영향으로 전에 종노릇하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이는 사도의 모든 수고를 헛되게 만드는 것입니다(10~11).
3. 사도는 갈라디아 사람들이 처음에 어떤 마음으로 복음을 받았는지를 상기시킵니다. 그들은 바울 사도가 가진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고, 천사와 같이 혹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그를 영접해주었습니다(13~14). 왜 그랬을까요? 바울이 전한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눈이라도 빼어서 바울의 연약한 시력을 대신하고 싶어 할 정도로 바울을 사랑했습니다(15). 이러한 모습은 복음의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을 어떤 존경과 사랑으로 대했는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은혜 받는 심령이 어떤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4. 그러나 아무리 그러했을지라도, 지금 현재에는 거짓 교사들의 영향으로 바울을 원수로 여긴다면, 그것은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떠났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16) 사도는 거짓 교사들이 선한 동기로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 사람들과 바울 사이를 이간하려는 목적으로 열심을 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17~18). 그러나 사도는 마치 자녀를 해산하는 어머니 같은 심정으로, 지금도 갈라디아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해산하는 수고를 감당하겠다고 말합니다(19). 그래서 사도는 갈라디아 사람들을 부모의 심정으로 엄히 꾸짖고 싶어 합니다(20).
5. 사도가 꾸짖으려는 것은, 그들이 완전히 율법 아래로 돌아간 것은 아니라도, 지금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입니다(21). 그래서 사도는 구약의 두 언약의 비유를 들려줍니다. 아브라함이 두 아내가 있어서 그들로부터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고, 사라를 통해서 이삭을 얻었습니다. 하갈은 종이고 사라는 자유인입니다. 이스마엘은 육신을 따라(아브라함과 사라의 인간적 계획 하에 자기들의 노력으로) 낳은 아들이었으나, 이삭은 약속을 따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아들이었습니다.
6. 하갈은 아라비아의 시내산, 현재의 예루살렘을 상징하고,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상징합니다. 두 여인은 두 언약을 대표합니다. 하갈은 율법 언약을, 사라는 약속 언약을 대표합니다. 사도는 이 비유를 통해, 갈라디아 사람들이 만일 율법을 지켜서 할례를 행하려 한다면, 그것은 종인 하갈에게로, 그리고 육체의 방법에로, 지상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자유인인 사라에게 속하여, 천상의 예루살렘의 성도가 될 사람들입니다. 갈라디아에서 예수를 믿은 사람들은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들입니다(28). 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하였듯이, 언제나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하게 되는데, 지금 갈라디아 교회에서 거짓 교사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29). 그러므로 사도는 이제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고 꼭 집어서 명령합니다(30). 이는 거짓 교사들을 내쫓으라는 명령입니다.
7.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율법과 복음의 문제로 씨름합니다. 율법적 성향에 묶여있는 본성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선명한 복음의 진리를 들어야 합니다. 외면적이고 종교적인 행위로 신앙을 확인하고 증명하려는 모든 태도는, 사도가 배척하는 율법주의적인 경향입니다.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자들은 복음의 은혜와 자유와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복음은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제시하며, 그 약속과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음으로 붙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고 자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고, 자녀됨의 확신을 누리게 하십니다. 당신은 그 은혜를 알고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하나님 나라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셔서,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감당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부르심과 은혜를, 율법의 행위와 자기의 의로 바꾸지 않게 하시며, 일평생 그 은혜를 더 알고 누리며, 사나 죽으나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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