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출애굽기 20:1-6 묵상
작성자
wkchurch
작성일
2025-01-26 14:22
조회
133
[출애굽기 20:1-6 묵상]
신학교에서 기독교 윤리 수업을 듣던 중 십계명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십계명과 개신교의 십계명이 순서가 조금 다르다는 것입니다. 3계명부터는 같은데 첫번째, 두번째 계명은 다릅니다. 개신교에서는 십계명의 첫 계명이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3절 내용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보는 첫 계명은 2절입니다. 2절 말씀 다시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문장 자체가 명령 형식으로 되어 있진 않지만, 유대인들은 이것을 첫 번째 계명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의 첫번째, 두번째 계명을 합쳐서 두번째 계명으로 이해합니다. 개신교에서는 20장 2절 말씀을 십계명의 전제사항 정도로 보고 있지요.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열가지 명령으로만 대하면 딱딱한 느낌이 듭니다. 법 조문 같기도 하고 뭘 하라는 긍정적인 명령보다는 하지 말라는 금지의 명령이 많습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이나, 우상을 두지 말라는 계명이나, 다 제대로 지키지 못하지요. 계명들 하나하나를 찬찬히 뜯어보면, 명령들 자체가 배타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어떤 신도 두지 말고 우상도 만들지 말라는 첫 두 계명은 상당히 배타적이게만 느껴집니다. 십계명이 딱딱하기만한 법조문처럼 보일 수 있지만, 20장 2절 말씀을 함께 보게 되면 다르게 다가옵니다.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명령도,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명령도,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명령도, 이유를 따지지 말고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명령의 수준을 넘어섭니다. 하나님만을 배타적으로 섬겨야 하는 이유는, 아니 하나님만을 기쁘게 섬길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부모가 명령할 수 있습니다. 규제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흉기를 주지 않고 독극물을 주지 않습니다. 게임하는 시간을 제어합니다. 성경을 읽으라고 부드럽게 잔소리할 수 있습니다. 그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 사랑으로 키운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철이 들 때까지 사랑으로 양육할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명령을 주신 것은 내 밑에서 이거 지키고 저거 지키고 아랫사람처럼 평생 살라는 의도가 아닙니다. 노예로 살던 그 생활에서 끌어내어 자유를 주었기에,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게 살기 위한 한계를 지정해 두시는 것입니다.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해 두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악의 늪에서 구해 내신 하나님은 앞으로 계속 그들을 건져내실 것입니다.
방금 읽은 2절 말씀에 나오는 첫 어구인 “나는”은 강조되어 있습니다. “너를 노예생활에서 끄집어 낸 신은 나 여호와다. 너는 그 생활로 돌아가면 안 된다. 내가 그런 신이니 지금부터 얘기하는 규정들을 잘 지키렴“. 이것을 주지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그 수치스럽고 죽기보다 못한 노예생활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나님의 백성들을 붙잡아 주는 역할, 가이드 역할을 해 주는 것이 십계명인 셈이지요.
신학교에서 기독교 윤리 수업을 듣던 중 십계명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십계명과 개신교의 십계명이 순서가 조금 다르다는 것입니다. 3계명부터는 같은데 첫번째, 두번째 계명은 다릅니다. 개신교에서는 십계명의 첫 계명이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3절 내용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보는 첫 계명은 2절입니다. 2절 말씀 다시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문장 자체가 명령 형식으로 되어 있진 않지만, 유대인들은 이것을 첫 번째 계명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의 첫번째, 두번째 계명을 합쳐서 두번째 계명으로 이해합니다. 개신교에서는 20장 2절 말씀을 십계명의 전제사항 정도로 보고 있지요.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열가지 명령으로만 대하면 딱딱한 느낌이 듭니다. 법 조문 같기도 하고 뭘 하라는 긍정적인 명령보다는 하지 말라는 금지의 명령이 많습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이나, 우상을 두지 말라는 계명이나, 다 제대로 지키지 못하지요. 계명들 하나하나를 찬찬히 뜯어보면, 명령들 자체가 배타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어떤 신도 두지 말고 우상도 만들지 말라는 첫 두 계명은 상당히 배타적이게만 느껴집니다. 십계명이 딱딱하기만한 법조문처럼 보일 수 있지만, 20장 2절 말씀을 함께 보게 되면 다르게 다가옵니다.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명령도,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명령도,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명령도, 이유를 따지지 말고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명령의 수준을 넘어섭니다. 하나님만을 배타적으로 섬겨야 하는 이유는, 아니 하나님만을 기쁘게 섬길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부모가 명령할 수 있습니다. 규제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흉기를 주지 않고 독극물을 주지 않습니다. 게임하는 시간을 제어합니다. 성경을 읽으라고 부드럽게 잔소리할 수 있습니다. 그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 사랑으로 키운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철이 들 때까지 사랑으로 양육할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명령을 주신 것은 내 밑에서 이거 지키고 저거 지키고 아랫사람처럼 평생 살라는 의도가 아닙니다. 노예로 살던 그 생활에서 끌어내어 자유를 주었기에,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게 살기 위한 한계를 지정해 두시는 것입니다.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해 두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악의 늪에서 구해 내신 하나님은 앞으로 계속 그들을 건져내실 것입니다.
방금 읽은 2절 말씀에 나오는 첫 어구인 “나는”은 강조되어 있습니다. “너를 노예생활에서 끄집어 낸 신은 나 여호와다. 너는 그 생활로 돌아가면 안 된다. 내가 그런 신이니 지금부터 얘기하는 규정들을 잘 지키렴“. 이것을 주지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그 수치스럽고 죽기보다 못한 노예생활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나님의 백성들을 붙잡아 주는 역할, 가이드 역할을 해 주는 것이 십계명인 셈이지요.
5절 말씀 하반절에는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라고 기록합니다.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 계명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는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겠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명령이 무겁게 느껴져서 어기고 또 어기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결국 계명을 미워하게 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 저주를 퍼부으시겠다는 호랑이 선생님 같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 계명을 또 못 지키고 또 실패하고 넘어지겠지만, 너희가 나를 미워하기까지는 하지 않을거다. 그러나 끝끝내 나를 미워하게 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그 죄를 찾을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아무 생각없이 계명만 하나 하나 지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6절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계속 됩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십니다. 감정 없는 로봇처럼 계명을 지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없이 율법 조문을 따르던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빠진 율법, 행간에 기록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해 내지 못하고 지키는 율법은 앙꼬 없는 찐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켜 천대까지 베푸시는 은혜를 붙잡으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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