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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런던윔블던한인교회</title>
		<link>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link>
		<description>Wimbledon Korean Baptist Church</description>
		
				<item>
			<title><![CDATA[송구영신예배]]></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66]]></link>
			<description><![CDATA[<p data-start="179" data-end="262">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p>
<p data-start="179" data-end="262">새해를 기도로 맞이하는 <strong data-start="221" data-end="229">송구영신예배</strong>를 드립니다.</p>
<p data-start="179" data-end="262">일시: 12월 31일 오후 9시</p>
<p data-start="179" data-end="262">성도님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p>]]></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Wed, 24 Dec 2025 15:49:4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2"><![CDATA[교회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성탄 연합 예배]]></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65]]></link>
			<description><![CDATA[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성탄 연합 예배가 아래와 같이 드려집니다.

일시: 12월 25일(목)오전 11시

모든 성도님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Wed, 24 Dec 2025 15:43:1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2"><![CDATA[교회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5월 25일 야외 예배]]></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64]]></link>
			<description><![CDATA[다음주 5월 25일 주일예배는 야외예배입니다

장소 :  Horton Country Park . (BBQ A)

날짜 및 시간 : 5월 25일 일요일  10시

주소 : West Park Farmhouse Horton Country Park Epsom Surrey KT19 8PL

<img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7090" src="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wp-content/uploads/2025/05/Horton-park-1.jpg-300x287.png" alt="" width="300" height="287" />

&nbsp;]]></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Sun, 18 May 2025 21:20:4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2"><![CDATA[교회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월 4째주 소식]]></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63]]></link>
			<description><![CDATA[<ul>
 	<li>2월23 일  예배후3시부터 청장년 성경 공부가 있습니다.</li>
 	<li>이번주간 새벽기도는 화요일부터 재개 됩니다.</li>
 	<li>28일(금) 10시반 WBC에서 기도회가 있습니다.</li>
 	<li>박민준,장현우 형제의 어린이 사역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li>
 	<li>다음 주일 family Service 로 St.James에서 드리고, 예배중 주의 만찬이 있습니다.</li>
</ul>]]></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Sun, 23 Feb 2025 11:45:1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2"><![CDATA[교회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월 1째주 소식]]></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62]]></link>
			<description><![CDATA[&nbsp;
<ul>
 	<li>14일(금) 10시반에 WBC 에서 기도회가 있습니다.</li>
 	<li>다음주 주일예배 후 운영운원회가 있습니다.</li>
 	<li>성경통독 : 신명기 1장~34장 (월~토) 매일 통독표에 따라 읽으시면 됩니다.</li>
</ul>]]></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Wed, 12 Feb 2025 08:25:1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2"><![CDATA[교회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출애굽기 20:1-6 묵상]]></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61]]></link>
			<description><![CDATA[[출애굽기 20:1-6 묵상]
신학교에서 기독교 윤리 수업을 듣던 중 십계명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십계명과 개신교의 십계명이 순서가 조금 다르다는 것입니다. 3계명부터는 같은데 첫번째, 두번째 계명은 다릅니다. 개신교에서는 십계명의 첫 계명이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3절 내용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보는 첫 계명은 2절입니다. 2절 말씀 다시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문장 자체가 명령 형식으로 되어 있진 않지만, 유대인들은 이것을 첫 번째 계명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의 첫번째, 두번째 계명을 합쳐서 두번째 계명으로 이해합니다. 개신교에서는 20장 2절 말씀을 십계명의 전제사항 정도로 보고 있지요.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열가지 명령으로만 대하면 딱딱한 느낌이 듭니다. 법 조문 같기도 하고 뭘 하라는 긍정적인 명령보다는 하지 말라는 금지의 명령이 많습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이나, 우상을 두지 말라는 계명이나, 다 제대로 지키지 못하지요. 계명들 하나하나를 찬찬히 뜯어보면, 명령들 자체가 배타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어떤 신도 두지 말고 우상도 만들지 말라는 첫 두 계명은 상당히 배타적이게만 느껴집니다. 십계명이 딱딱하기만한 법조문처럼 보일 수 있지만, 20장 2절 말씀을 함께 보게 되면 다르게 다가옵니다.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명령도,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명령도,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명령도, 이유를 따지지 말고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명령의 수준을 넘어섭니다. 하나님만을 배타적으로 섬겨야 하는 이유는, 아니 하나님만을 기쁘게 섬길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부모가 명령할 수 있습니다. 규제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흉기를 주지 않고 독극물을 주지 않습니다. 게임하는 시간을 제어합니다. 성경을 읽으라고 부드럽게 잔소리할 수 있습니다. 그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 사랑으로 키운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철이 들 때까지 사랑으로 양육할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명령을 주신 것은 내 밑에서 이거 지키고 저거 지키고 아랫사람처럼 평생 살라는 의도가 아닙니다. 노예로 살던 그 생활에서 끌어내어 자유를 주었기에,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게 살기 위한 한계를 지정해 두시는 것입니다.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해 두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악의 늪에서 구해 내신 하나님은 앞으로 계속 그들을 건져내실 것입니다.

방금 읽은 2절 말씀에 나오는 첫 어구인 “나는”은 강조되어 있습니다. “너를 노예생활에서 끄집어 낸 신은 나 여호와다. 너는 그 생활로 돌아가면 안 된다. 내가 그런 신이니 지금부터 얘기하는 규정들을 잘 지키렴“. 이것을 주지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그 수치스럽고 죽기보다 못한 노예생활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나님의 백성들을 붙잡아 주는 역할, 가이드 역할을 해 주는 것이 십계명인 셈이지요.
<p style="text-align: right;">5절 말씀 하반절에는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라고 기록합니다.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 계명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는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겠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명령이 무겁게 느껴져서 어기고 또 어기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결국 계명을 미워하게 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 저주를 퍼부으시겠다는 호랑이 선생님 같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 계명을 또 못 지키고 또 실패하고 넘어지겠지만, 너희가 나를 미워하기까지는 하지 않을거다. 그러나 끝끝내 나를 미워하게 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그 죄를 찾을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아무 생각없이 계명만 하나 하나 지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6절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계속 됩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십니다. 감정 없는 로봇처럼 계명을 지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없이 율법 조문을 따르던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빠진 율법, 행간에 기록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해 내지 못하고 지키는 율법은 앙꼬 없는 찐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켜 천대까지 베푸시는 은혜를 붙잡으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p>]]></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Sun, 26 Jan 2025 14:22:1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10"><![CDATA[성경읽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월 4째주 소식]]></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60]]></link>
			<description><![CDATA[<ul>
 	<li>31일(금) 10시반에 WBC 에서 기도회가 있습니다.</li>
 	<li>2월 2일 주일예배는 11시에 WBC 에서 있습니다.</li>
 	<li>성경통독 : 레위기 1장~27장 (월~토) 매일 통독표에 따라 읽으시면 됩니다</li>
</ul>]]></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Sun, 26 Jan 2025 14:16:3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2"><![CDATA[교회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월 3째주 소식]]></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59]]></link>
			<description><![CDATA[<ul>
 	<li>1월26일 구정맞이 만찬이 있고 만찬 이후에 운영위원회가 있습니다.</li>
 	<li>성경통독 : 출애굽기1장~40장 (월~토) 매일 통독표에 따라 읽으시면 됩니다</li>
</ul>]]></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Sun, 26 Jan 2025 14:11:4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2"><![CDATA[교회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39:1-5 묵상]]></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58]]></link>
			<description><![CDATA[[창 39:1–5 묵상]
최근 한 시사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사회자가 마무리하면서, 출연 소감이나 개인적인 염원을 5글자에 담아 보라고 패널들에게 요청했습니다. 딱 5자로 한 마디만 하라고 하니 한 분이 상당히 난처해 했습니다. 준비를 못 했다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요. 떠오르는 생각을 이어서 말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2,30분 정도 얘기했던 것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일정 시간 이야기한 내용을 요약하기도 쉽지 않은데, 지금까지의 삶을 5글자로 요약해 보라는 요청을 받으면 정말 막연할 것입니다. 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한 사람의 인생을 한 마디로 줄여서 표현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입니다 (창 5:22,24).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라는 어구가 그의 인생문장입니다 (창 15:6; 롬 4:3; 갈 3:6; 약 2:23). 오늘 본문은 요셉의 인생을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로 요약합니다. 창세기 39장에서만 4번이나 반복되는 표현입니다 (2,3,21,23절). 창세기의 저자로 알려진 모세만 요셉의 인생을 이렇게 정리한 것이 아닙니다. 스데반 집사도 요셉을 동일하게 표현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 9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세월이 지나도 변치않는 평가입니다. 한동안 그렇게 평가받다가 후에는 전혀 다르게 평가받았던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동일하게 이어지는 평가였습니다. 칠십인역 창세기 39장속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표현은 모두 계속되는, 지속되는 의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평가가 아닌 것입니다. 변함없는 진리를 기록하는 성경은 요셉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모세가 흠모했던 믿음의 조상이었던 것만이 아닙니다. 스데반도 인정하고 있었지요.

하나님은 요셉이 채색옷을 입고 귀티가 줄줄 흐르는 삶을 살 때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노예도 팔려갈 때도 함께 하셨습니다. 또한 그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창 39:21,23).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이것을 뒤집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노예로 팔려서 사막을 넘어갈 때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요셉이 감옥 속에 있었으나 범사에 형통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느꼈기 떄문에 요셉은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끈기를 가지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자가 다시 당선되었습니다. 며칠 후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지요. 선거결과가 트럼프의 승리로 나왔을 때, 몇몇 유명인들이 미국을 떠나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트럼프의 정책에 반대하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대통령이 될 수 없고 그가 통치하는 나라에서는 살 수 없다고 표현한 것이지요. 실제로 “캐나다 이민”을 검색한 빈도가 1,270%나 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와 전혀 다른 정치색을 가진 이가 나라의 수장이 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요셉은 바로왕 아래서도 형통했습니다. 이방신들을 섬기는 이집트 왕을 알현하면서도 형통했다고 성경을 말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는 형통합니다.

본문 속 요셉을 세상의 눈으로 보면 감옥에 있으니 형통하다고 생각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품 안은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형통합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수입이 허락되지 않아도, 남보다 조금 덜 넉넉하게 살아도, 일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은 형통한 삶입니다. 이것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인생문장은 무엇입니까?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을 우리 인생 요약본은 어떤 것이 될까요? 우리 인생을 붙들어 주고 난파되지 않도록 길잡이가 되어 줄 인생문장이 어떻게 기록되기 원하십니까?

잘 아는 지인에게 너의 삶을 5글자로 요약해 보라고 요청해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어주는 삶”. 그의 삶을 잘 아는 저였기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정말 많이 수고했다는 마음마저 들더군요.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그의 주인 보디발이 보았다고 3절은 기록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인생문장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인정되는 내용입니까? 우리가 우리 삶을 5글자로 표현하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 삶을 표현하시는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까요? 오늘 하루,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시며 인생 문장을 뽑아보시기 바랍니다. 생각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알려주시라고, 필생의 비전을 주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받은 그 문장대로 우직하게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Sat, 18 Jan 2025 21:32:4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10"><![CDATA[성경읽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32:24-29 묵상]]></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57]]></link>
			<description><![CDATA[[창세기 32:24–29 묵상]
현재 영국에 있는 한국 축구선수 중에 손흥민 선수가 가장 유명할 겁니다. 이번에 소속팀과 1년 연장 계약을 맺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기 계약을 할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지요. 아마도 소속팀에서는 손흥민 선수의 전성기가 지났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운동 선수는 나이를 못 속입니다. 나이가 들면 폼이 떨어지게 마련이고 격렬하게 경기한 후에는 회복속도도 더딥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이를 속일 수 없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야곱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야곱이 하나님의 천사 혹은 하나님과 씨름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때 야곱의 나이가 적어도 97세였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이 147세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야곱은 인생의 3분의 2쯤 지난 때에 사력을 다해 씨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즘 한국 여성의 기대 수명이 90세라고 합니다. 야곱의 나이를 현대로 환산해 본다면 60이 된 사람일 것입니다. 이 나이가 된 사람이 활력이 넘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30대 40대의 사람과 씨름한다면 이기기란 아주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 시기의 야곱은 아무래도 기력이 한풀 꺾인 사람이었을테고, 나이를 속일 수 없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본문 25절에는 영적 존재가 야곱을 이기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상막하의 씨름이 계속되자 그 사람은 야곱의 관절을 쳤습니다. 그리고는 사라지려 했지요. 그 때, 그 사람은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던집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27절). 이 사람이 천사였든 하나님이었든 야곱의 이름을 몰라서 물어본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름을 알면서도 물어보았겠지요. 야곱의 입에서 “야곱”이라는 대답이 흘러 나왔습니다. 야곱의 뜻이 무엇입니까? “발꿈치를 붙잡았다”(창 25:26)는 뜻입니다. 날 때부터 형을 이겨 먹으려고, 형보다 먼저 세상으로 나오려고 형의 발꿈치를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이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너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느냐? 네가 생각하는 너는 어떤 사람이냐?”라는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이 질문은 “남에게 지는 꼴은 죽어도 못 보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만 했던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하는가?”라는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그 질문에 자신을 “발꿈치를 붙잡는 자”, “속이는 자”라고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움켜쥐려 했던 사람, 모조리 빼앗으려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실체를 순순히 인정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28절 말씀 같이 읽습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지금까지 야곱의 마음을 갉아 먹었고 지금까지 야곱의 심령을 붙잡고 있었던 자기 정체성, 속이는 자요 등쳐먹는 자요 빼앗는 자. 그 삐뚤어진 정체성을 새로운 정체성으로 바꾸어 준 것입니다. 그러고는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이 언제 하나님을 이겼습니까? 이기지는 못했습니다. 막상막하의 싸움이었지 강가에서 만난 그 사람을 이기지는 못했습니다. 그 사람이 야곱을 향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라 말했을 때 야곱은 속으로 의문을 가졌을 겁니다. “내가 언제 하나님을 이겼다는 거지?”.

야곱이 언제 하나님을 이겼습니까? 자신이 벌레만도 못한 인간임을 순순히 인정하고 고백했을 때 이겼습니다. 야곱이 측은하게 다리를 절며 걸었을 때 이겼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요.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가 오기까지, 보혈의 혈통이 이어지도록 택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믿음의 족장들이 있었습니다. 택한 자 야곱과 씨름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이길 수 없었던 게 아닙니다. 일부러 비등비등한 것처럼 행동해 주신 것뿐입니다. 그리고 일부러 져주신 것 뿐입니다. 사랑을 입은 자가 자기 잘못과 연약함을 모두 인정했을 때, 그리고 사랑하는 자가 다리를 절뚝이며 걸을 때, 하늘 아버지의 마음은 무장해제 되었던 것입니다.

저희 집 아이들이 어렸을 때 몸을 부딪히며 놀아 주던 기억이 있습니다. 몸집이 작다보니 놀이동산 기구 타는 기분이 들도록 신나게 놀아주었지요. 큰 애, 작은 애 돌아가며 놀아주다 보면 팔이 슬슬 아파옵니다. 그 때는 저도 좀 쉬어갈 겸 아이들과 씨름을 하는데요. 사실 거의 일방적인 씨름입니다. 제가 왠만해서는 질 수 없는 씨름입니다. 샅바를 잡고는 아이가 힘이 센 것처럼 띄워주고는 제가 이겨 버립니다. 한 번은 둘째 아이가, 계속 지니까 분했는지 펑펑 울었습니다. 겨우 달래서 씨름을 다시 했는데 누가 이겼을까요? 아이가 이겼습니다. 사랑하는 아이가 눈물을 터뜨릴 때 제 마음은 무장 해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져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십니다 (습 3:17).]]></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Sat, 18 Jan 2025 21:31:3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10"><![CDATA[성경읽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8:13-18 묵상]]></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56]]></link>
			<description><![CDATA[[창 8:13-20 묵상]
쓰나미가 지나간 곳은 그야말로 폐허입니다. 창세기 1장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지요. 그런데 본문 속 노아는 전 지구가 혼돈하고 공허한 그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방주의 문을 닫고 들어갔다가 1년이 지나 문을 열었습니다. 그가 마주한 세상은 폐허였을 것입니다.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전혀 없는 땅을 마주했을 것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라는 표현 외에는 견줄 말이 없었겠지요. 노아의 눈으로 본 홍수심판 후의 세상은 처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달랐습니다.

창세기 8장을 보면,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3절에는 육백년 하고도 일년이 지난 해, 첫째달 첫날에 땅 위에 물이 걷혔다고 기록합니다. 육백1년 1월 1일. New Year’s day, 새로운 시작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15절에서는 이 새로운 시작의 처음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천지창조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지요. 새로운 시작에서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하신 일은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17절 같이 읽습니다.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마지막 부분에 창세기 1장에 나왔던 익숙한 어구가 등장합니다.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리라”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등장하는 ‘땅’, ‘생육하다’, ‘번성하다’는 세 단어가 연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1장 이후 처음입니다.

창세기 1장을 연상시키는 표현의 반복들을 보며 우리가 주지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홍수 이후의 새로운 시작은 단순히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홍수로 세상을 끝장내려 하셨던 게 아니라, 홍수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만드시려 했던 것입니다. 본문 17절에는 “생육하고 번성하리라”는 약속이 나옵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이었지만 8장에서는 [약속]으로 주어집니다. 오늘 읽을 창세기 9장에도 2번이나 [명령]으로 주어집니다. 명령이 약속으로, 약속이 명령으로 형체를 바꿉니다. 무슨 말입니까? 구약학자들이 숱하게 얘기하는 “하나님의 명령은 약속이다”는 명제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받아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열심히 생육하고 번성해야 합니다. 가족을 보호하고 자손을 두기 위해 애쓰고 수고해야 하지요. 그러나 “생육하고 번성하리라”는 약속으로 주어지면 전혀 다릅니다. 우리를 품에 안고 “내가 너희 가족을 보호해 줄게, 염려마”하시며 속삭이시는 부드러운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방주의 문을 열고 폐허가 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노아는 절망스러웠을 겁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살리시겠다는 약속, 보호하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질 때, 우리는 우리 인생의 다음 장을 열게 됩니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고 우리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질 때, 새로운 챕터가 열립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명령하시고 그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심판하는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명령하시지만, 그 명령을 지킬 수 있도록 힘 주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우리가 믿습니다.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 때문에 우리가 삽니다. 우리에게 폐허가 된 과거,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고 해도,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고 새롭게 빚으시는 하나님 때문에 삽니다. 주 안에 감추인 새 생명을 얻으니 이전에 좋던 것도 이제는 의미가 없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산천도 초목도 새롭게 되었기 때문에 이전의 원수도 친구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약속의 말씀을 받은 노아는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20절 말씀 같이 읽습니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가장 먼저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한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라는 표현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만남이 있었을 때 주로 쓰였습니다. ‘여호와의 제단’, 혹은 ‘여호와 앞에서 제단’을 쌓았다는 표현은 일반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 제단’, 다시 말해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았다는 표현은 독특합니다. 한 인간이 하나님과 특별한 만남을 가진 후에 경외심에 사로잡혀 제단을 지었을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잘 아시는 창세기 12장에서 하란을 떠난 아브라함을 다시 하나님께서 만나주시자,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습니다(7절). 창세기 13장에서도 조카 롯에게 좋은 땅을 양보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언약의 말씀을 하신 후 아브라함이 또다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습니다(18절).

노아도 아마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경외심에 사로 잡혀 제단을 쌓았을 것입니다. 온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는 분, 물도 마음대로 조종하시고,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임을 방주 속에 있던 내내 그가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전에 알던 하나님보다 더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하나님을 체험하였을 것입니다. 바라고 원하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와 같이 강렬하게 만나주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귀한 은혜의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교회적으로도 하나님을 위한 참된 제단이 쌓여지기를 소망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Sat, 18 Jan 2025 21:30:1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10"><![CDATA[성경읽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월 2째주 소식]]></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55]]></link>
			<description><![CDATA[<ul>
 	<li>17일(금) 10시반에 WBC 에서 기도회가 있습니다.</li>
 	<li>1월 19일  예배후3시부터 청장년 성경 공부가 있습니다.</li>
 	<li>성경통독 : 창세기25장~50장 (월~토) 매일 통독표에 따라 읽으시면 됩니다</li>
</ul>
&nbsp;]]></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Sat, 18 Jan 2025 21:23:5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2"><![CDATA[교회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4년 12월 8일, 윔블던한인교회 창립 25주년 감사예배]]></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54]]></link>
			<description><![CDATA[25년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합니다.

감사 예배후 한자리에 모여 25주년 기념사진

<img class="alignnone wp-image-6866" src="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wp-content/uploads/2025/01/25th-anniversary-300x225.jpg" alt="" width="783" height="587" />]]></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Sat, 18 Jan 2025 21:02:2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2"><![CDATA[교회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2월 1일 WBC 연합예배]]></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53]]></link>
			<description><![CDATA[오는 주일 12월 1일은 윔블던 침례교회(WBC)와 연합예배를 드립니다.
11시에 예배가 시작되며, 10시반부터 개인묵상의 시간이 있습니다.
예배 시 침례식도 있겠습니다.

원래 모이는 St. James가 아닌 WBC에서 뵙겠습니다.
교회 위치는 129 The Broadway, London SW19 1QJ입니다.

영어설교이며, 한글통역이 있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Mon, 25 Nov 2024 22:31:5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2"><![CDATA[교회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0월 6일 WBC연합예배]]></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52]]></link>
			<description><![CDATA[&nbsp;

오는 주일 10월 6일은 윔블던 침례교회(WBC)와 연합예배를 드립니다.
11시에 예배가 시작되며, 10시반부터 개인묵상의 시간이 있습니다.

원래 모이는 St. James가 아닌 WBC에서 뵙겠습니다.
교회 위치는 129 The Broadway, London SW19 1QJ입니다.

영어설교이며, 한글통역이 있겠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Sun, 06 Oct 2024 08:13:4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2"><![CDATA[교회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9월 1일 영국교회 (WBC)예배]]></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51]]></link>
			<description><![CDATA[&nbsp;

이번주일 9월 1일에는 영국교회(WBC)에서 2시에  한인예배로만 드립니다.

중고등부 청년들이 수련회를 마치고 1시 30분경 영국교회로  도착예정이라고 하오니,

학부모님들께서는 시간을 참고하여주세요.

교회 위치는 129 The Broadway, London SW19 1QJ입니다

&nbsp;

&nbsp;

&nbsp;]]></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Thu, 29 Aug 2024 22:09:4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2"><![CDATA[교회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중고등부 수련회]]></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50]]></link>
			<description><![CDATA[<h3>중고등부 여름 수련회</h3>
기간 : 8월 30일 토요일 오후 5시 부터 9월 1일 일요일 오전 12시까지  (2박3일간)

장소 : Tonbridge의 Hornbeam House, Carroty Wood, Higham Ln, TN11 9Qx

주제 : 다니엘과 에스더의 주제를 탐구하며, 디아스포라로서의 부르심의 삶을 살아가는 것

&nbsp;

-코치 안내-

출발 장소 :  8월 30일(금) 금요일 3시 Lidl 코치스테이션 모여 3시 30분 출발

도착 장소 :  9월 1일 일요일  영국 교회(WBC) 로 1시 30분 도착 예정

&nbsp;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말씀으로 변화 될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Thu, 29 Aug 2024 22:07:4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2"><![CDATA[교회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8월 18일 연합예배]]></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49]]></link>
			<description><![CDATA[오는 주일 8월 18일은 윔블던 침례교회(WBC)와 연합예배를 드립니다.

11시에 예배가 시작되며, 10시반부터 개인묵상의 시간이 있습니다.

원래 모이는 St. James가 아닌 WBC에서 뵙겠습니다.

교회 위치는 129 The Broadway, London SW19 1QJ입니다.

영어설교이며, 한글통역이 있겠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Mon, 12 Aug 2024 22:09:2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2"><![CDATA[교회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6월 9일 연합예배]]></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48]]></link>
			<description><![CDATA[오는 주일 6월 9일은 윔블던 침례교회(WBC)와 연합예배를 드립니다.

11시에 예배가 시작되며, 10시반부터 개인묵상의 시간이 있습니다.

원래 모이는 St. James가 아닌 WBC에서 뵙겠습니다.

교회 위치는 129 The Broadway, London SW19 1QJ입니다.

영어설교이며, 한글통역이 있겠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Sat, 08 Jun 2024 13:46:1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2"><![CDATA[교회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갈라디아서 5장.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title>
			<link><![CDATA[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content_redirect=2647]]></link>
			<description><![CDATA[갈라디아서 5장.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

&nbsp;

&nbsp;

&nbsp;

1.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그리고 다시는 율법의 종의 멍에를 메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성령을 좇아 행하는 길뿐입니다(5,16,18,25). 만일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대로, 복음을 믿기도 하고, 할례도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면,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아무 유익도 되지 못할 것이며(2), 그들은 할례뿐 아니라, 율법의 모든 조항도 다 지켜서 모든 율법을 만족시켜야 할 것입니다(3).

&nbsp;

&nbsp;

&nbsp;

2. 이렇게 율법의 행위에 의지하는 자들은 결국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4). 그러므로 성도가 사는 길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5). 문제는 할례를 받았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그 믿음이 사랑으로 표현이 되는가에 있습니다(6). ‘오직 믿음(이신칭의)’의 교리를 부인하는 것은 은혜를 질식시키고 교회를 무너뜨립니다. 사도는 거짓 교사들의 거짓 복음이 어떻게 갈라디아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7~12). 거짓 복음인 할례의 복음은, 인간의 자존심을 한껏 세워주지만, 참 복음은 오직 십자가의 복음으로, 거치는 것이며 인간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멸하는 것입니다. 할례를 주장하는 거짓 교사들은 할례 때 베어버려지는 양피처럼 잘려져 나가야만 한다고 사도는 강조합니다(12).

&nbsp;

&nbsp;

&nbsp;

3. 성령으로 행하면 자유 안에서 서로를 위해, 서로 안에서 종노릇하게 됩니다(13). 사랑은 율법의 마침이며, 완성입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면 더 이상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됩니다(16).

&nbsp;

&nbsp;

&nbsp;

4. 이제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영적 전쟁을 주목합니다. 성도의 영혼은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 간의 각축장입니다(17). 하지만 이것은 대등한 두 세력의 싸움이 아니고, 성령이 내주하시는 새 피조물이 된 신자 자신과, 그 내면에 남아있는 죄성(육체의 소욕)과의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에만 율법 아래 매이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18). 결국 육체의 일(열매)들이 그 사람의 삶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19~21),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을 보면 그가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22~24). 성령을 좇아 사는 사람은 자기의 헛된 영광과 자랑, 그리고 남을 향한 시기와 질투의 마음에 이끌리지 않습니다.

&nbsp;

&nbsp;

&nbsp;

5.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알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성경의 지식만으로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의 내면에 육체의 소욕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아는 지식을 통하여, 자유를 누리게 하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좇아서 행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율법 아래서 벗어나며,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자유를 누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결코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 참 은혜의 복음 위에 서서, 성령의 충만하심을 구하고 성령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십시오.

&nbsp;

&nbsp;

&nbsp;

기도:

&nbsp;

하나님 아버지.

&nbsp;

세상의 자랑과 안목의 자랑과 이생의 자랑을 쫓아가는 육신의 삶, 탐욕의 삶을 더 이상은 살지 않게 하옵소서. 매순간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사는 은혜를 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성령님의 충만히 거하시는 은혜를 힘입어, 저희가 있는 곳에서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나게 하시고, 육체의 소욕들과 싸워 이기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자의 삶을 온전히 살게 하옵소서.

&nbsp;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nbsp;

&nbsp;]]></description>
			<author><![CDATA[wkchurch]]></author>
			<pubDate>Tue, 23 Apr 2024 07:30:2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wimbledonkoreanbaptist.org.uk/wpw/?kboard_redirect=10"><![CDATA[성경읽기]]></category>
		</item>
			</cha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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